과거 ADSL, VDSL 등의 인터넷 망이 막 보급되던 시절, 인터넷 회선 하나를 나눠 여러 대의 PC에서 동시에 접속하게 해주는 물건이 등장한다. 오늘날 말하는 유선공유기의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IP공유기나 라우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었다. 어쨌든 이 제품은 당시 물가로 꽤 비쌌던 초고속(?) 인터넷 회선을 나눠 쓸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녀석이었고 빠르게 각 가정에 보급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 공유기 시장을 평정한 최고의 제품은 바로 에이엘테크의 '애니게이트' 브랜드 제품이었다.

 

 

당시 드림라인에 ADSL 상품에 가입이 되어 있었는데 최고 속도는 겨우 10Mbps에 불과했다. 물론 그 이전까지 전화모뎀을 통해 PC통신이나 인터넷에 연결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마저도 매우 경이로운 고속 인터넷 환경이었다. 그 당시에도 현재와 같이 각 방에 PC가 한 대씩, 총 세 대가 있었는데 이 IP공유기는 정말 축복이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가장 고가의 좋은 제품을 골랐는데 그 제품이 바로 애니게이트 GW-300A 제품이었다. 초기 60Mbps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나왔다가 향후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80Mbps까지 지원하도록 리비전된 제품. 특이한 디자인과 저발열 설계, 안정적인 성능 거기다가 다른 공유기에서 지원하지 않았던 DMZ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여 사용 편의를 높인 고급형 모델이었다. 드림라인에서 하나로통신, 하나로통신에서 SK브로드밴드로 옮겨질 때까지 다시 말해서 'WIFI'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현역으로 오랫동안 말썽없이 자리를 지켰던 제품이기에 '명품'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애니게이트의 영광은 지속되지 못했다. 애니게이트의 제조사는 앞서 언급한데로 에이엘테크라는 회사였는데, 공유기 시장에서 얻은 성공을 밑천 삼아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사업 확장에 나선 에이엘테크는 결국 본 사업이었던 애니게이트 부문을 매각해버린다. 무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는 적절한 사례..

 

에이엘테크의 애니게이트 사업은 2008년 디반이라는 회사로 넘어갔고, 디반은 사업권을 다시 나눠 2009년 일반 소매 시장용 판권을 네오위키라는 회사로 넘기고 대형 마트 등 대량 판매 시장만 공략한다. 문제는 2011년 애니게이트의 소매 시장을 담당했던 네오위키에서 터져나왔다. 애니게이트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됐던 DDNS 서비스가 예고 없이 중단되는가 하면 고객센터 연결이 힘들어지다가 결국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애니게이트 브랜드를 네오위키와 함께 써오던 디반은 네오위키에서 불거진 문제가 자사에까지 미칠 것을 우려해 애니게이트 브랜드를 폐지하고 스마트게이트라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해 라인업을 꾸리는 등 애니게이트의 명맥이 끊어질 것이 확실시 되어 왔다.

 

그러던 와중에 2012년 7월 즈음부터 해서 애니게이트 제품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판매되는 제품은 과거 네오위키가 내놓았던 모델과 동일했고 애니게이트의 브랜드도 그대로 차용됐으나 라이트컴정보통신이란 곳으로 회사가 변경되었다. 아마 네오위키 혹은 디반 등 과거 애니게이트 브랜드를 차용했던 곳으로부터 사업권을 양도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중단된 DDNS 서비스도 오는 8월 14일 다시 재오픈한다고 하고 A/S센터와 홈페이지, 자료실 등이 모두 정상 운영되고 있다.

 

판매되고 있는 제품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바로 애니게이트 RG5500N. 네오위키가 막장으로 치닫기 직전에 나왔던 최후의 제품이다. 5dbi 안테나 3개(!)로 2T 3R 구성으로 무선 300Mbps와 유선 1000Mbps 기가비트 연결을 지원하는 모델로 5GHz 무선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수준급 제품이다. 더군다나 현재 가격도 매우 착하게 형성되서 현시점에서 가격대성능비를 본다면 최상급 수준의 제품으로 꼽을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외관 디자인과 전통적인 애니게이트 만의 편리한 관리자 모드는 여전하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과거의 영광을 당장에 누릴 수는 없겠지만, 부족했던 사후 지원 부분을 강화하고 고객과 소통하면서 다시금 인터넷공유기의 대명사 애니게이트로 당당히 일어서길 바란다.

블로그 이미지

kju135

back in the building

,